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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정치, 사회

촛불집회의 중요성과 참석자 수

혹자는 촛불집회의 참가인원이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말한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을 종교처럼 떠받드는 몇몇 이해 안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마음속으로는 이미 대통령을 탄핵했다며 숫자는 숫자일뿐 너무 연연해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어온다.


물론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매주 참가하는 촛불집회 참가자의 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닌 굉장히 큰 함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광장의 힘과 즐거움을 알아가는 것'으로 함축해서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후 국민들이 길거리에 나온것은 4.19혁명을 시작으로 부마 민주화항쟁, 6.10 민주화항쟁으로 이어지면서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이 과정들 속에서는 '광장의 힘'을 느낄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 '광장의 즐거움'을 느낄 수는 없었다. 시위(혹은 집회)현장은 언제나 위험했고, 사상자는 부지기수로 발생했던 안타까운 기억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광장문화의 새로운 전기를 맞게된 계기는 2002년 월드컵이었다. 길거리 응원은 '광장의 힘'이 필요 없었으며, 사람들이 온전히 '광장의 즐거움'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놀고, 즐길 거리가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하나됨을 느끼며 순수하게 즐기는 경험을 처음으로 할 수 있었던 일종의 문화충격이었으며, 월드컵 4강 신화와 함께 순식간에 전국을 강타한 사회적 현상이었다.



2008년 광우병사태 때의 촛불집회는 분명 과도기적인 부분이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 당시에도 처음은 문화행사로 시작했었고, 한 달 가까운 시간동안 평화롭게 진행됐었다. 광장에 처음으로 유모차 부대가 등장했고, MB정부를 조롱하고 풍자하는 노래를 부르고, 피켓을 들었으며, 여러 공연들을 즐기기도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이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최초의 폭력사태가 발생하면서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는 정도로 흘러갔다. 당시 광장에서 메아리치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전전긍긍하던 MB정부는 폭력사태를 빌미삼아 집회 참여자 모두를 폭력범으로 매도했고, 실제로 유모차를 끌고 광장에 나왔던 엄마들도 기소하는등 심각한 후유증까지 낳게 되었다.



2016년 11월의 현재 시점으로 돌아와보자.


박근혜 대통령이 피의자, 그것도 몸통으로 지목되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국민들은 다시 촛불들고 광장으로 모여들었지만, 현명하게도 과거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는 않으며 온전히 '광장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철저하게 평화집회라는 원칙을 지키고 있으며, 비록 2002년 월드컵때와 같은 순수한 즐거움은 없을지라도 그에 못지않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나이, 성별, 학교, 출신 지역 등 다양한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그 어떤 변수도 없이 그저 하나의 촛불로 개개인의 심정을 표현하며 직접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아마 현재 대한민국의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공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모습일 것이다.




그렇다고, 즐거움을 느낄 수 없는것도 아니다. 거리와 광장 곳곳에서 보기만 해도 웃음을 자아내는 여러 모습들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것은 감히 부가적인 부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평소에는 쉽게 함께 할 시간을 갖기 힘든 가족들,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사진을 찍으며 쉽게 기회를 가질 수 없는 공통의 관심사와 주제로 시간을 함께 한다는 사실은 그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 이승환, 전인권 등등의 유명가수의 공연들은 그런 즐거움을 더욱 배가 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분명 사람들은 작금의 현실에 분노를 느끼기에 집회에 참여하고 있지만, 역사에 한 현장에 참여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함께 자부심을 즐거움으로 치환하고 있는듯하다.



이제 이 글을 쓴 목적인 촛불집회의 참석자 수의 중요성에 대해 말해 보자. 난 촛불집회 참석자 수가 중요한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다.


하나는 이런 광장문화의 계승과 발전이다.


처음에 말했던 '광장의 힘과 즐거움을 알아가는 것'은 이미 의식적이든 아니면 무의식적로든 사회적으로 큰 영향이 미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을 직접 경험하는 것과 뉴스, 신문등의 미디어를 통해서 보는것은 큰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다.


개인적인 바램은 이제 우리나라의 고유의 문화로 발전하고 있는 광장문화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어리면 어린대로,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그 분들대로 나름의 어떤 감정과 생각들을 갖게 될 것이다.올 해의 촛불집회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집회를 터부시하는 인식은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향후 그런 사건이 일어나서는 안되겠지만 혹시라도 이번 사태에 준하는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올 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민들이 다시 촛불을 들고 행동에 나섰으면 하는 마음이다.



두 번째는 직접적인 영향력 행사이다.


사실 위의 전제는 틀린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대의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나라인 만큼 아무리 촛불이 많이 들린다해도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다만 앞으로의 정국이 어떤 식으로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단순하게 추측을 해보자면 박근혜 대통령은 끝까지 버티려고 할 것이고, 국회에서는 탄핵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될 뿐이다. 하지만, 그간의 모습들로 미루어 보건데 솔직히 누가 어떻게 일을 추진하던간에 그렇게 미덥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다가오는 토요일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으면 다시 전국적으로 100만이 넘는 촛불이 타오를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 촛불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나라 직접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표상으로 기억 될 수 있을 것이며, 정치인들은 경각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비록 간접적으로나마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지만 현재 상황만 따로 떼어내 보자면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버금가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다시 김진태 같이 망말을 하는 국회의원이 나올 수 있을까? 물론, 아무리 그래도 속으로 국민들을 그저 '한 표'만으로 생각하는 국회의원들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미드 뉴스룸


미드 <뉴스룸>을 첫회에서는 한 대학생이 '미국이 위대한 이유'에 대해 질문을 하자 주인공은 '미국이 위대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구체적인 수치까지 말하며 조목조목 대답해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대학생, 아니 초등학생들 마저도 우리나라가 왜 좋은 나라인지 물어보는 일은 없을 것이라 본다.(물론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우리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분출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나라라고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싶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이 비록 자랑스럽지는 않으나 이번 촛불집회를 겪으면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에 충분히 자랑스러워 하고, 자부심도 당당히 드러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마지막으로 노파심으로 한 마디를 더 하자면 촛불집회에 참석하며 그 에너지와 열망, 분위기에 너무 감격하여, 직접적으로 참여 하지 않는 주위의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생각은 주관적인 부문이며, 참여 여부는 개개인의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경험해봤으면 하는 바램은 분명 있지만 그렇다고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11월19일의 촛불집회의 참석자가 74만명으로 추산된다는 기사를 보고 문득 떠오른 생각에 간단히 의견을 적는다는 것이 너무 긴글이 되어 버렸다. ㅠㅠ 어찌됐던 쓸데없이 이런저런 얘기들을 글로 썼지만, 결국 최종 결론은 결국 '우리 모두 돌아오는 토요일에도 촛불집회에 많이 참석해서 함께해요.'가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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