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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정치, 사회

4.19 혁명과 박근혜 대통령

역사는 되풀이 된다. 


어떤 역사든 세부적인 상황까지 100% 똑같을 수 없겠지만, 본질을 들여다 보면 놀랄정도로 유사한 경우가 많이 보인다. 특히 나쁜 일인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이 하야를 외치고, 국회에서는 탄핵에 대한 논의가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현재의 상황은 마치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하기 직전의 상황이 오버랩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부정선거 여파로 4.19혁명이 일어나 각계의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고 교수들까지 참여해 시국선언을 발표, 하야를 요구했으며 국군과 주한미국대사관마저 지지를 철회하자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1960년 4월 26일 총사퇴하였다. 그러나 이승만은 이후에도 "내가 사임하면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질 것이 확실하다"며 대한민국 국회에 사임서 제출을 거부하며 대통령직을 놓지 않으려는 추태를 보였다. 


1960년 4월 20일 서울의 풍경


이 4.19혁명은 3.15부정선거 이후 전국 각지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들이 도화선이 됐다. 게다가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최루탄에 왼쪽눈이 관통된채로 발견되면서 국민들은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속적으로 항의 시위들이 일어나다가 1960년 4월 19일 오전 8시 30분에 서울 대광고등학교 학생들이 제일 먼저 가두시위를 시작하면서 4.19 혁명이 시작되었다. 부랴부랴 그 소식을 듣고 서울대 학생들이 그 시위에 합류하였고 결국엔 서울의 각 대학과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속속 합류하였고 거기에 일반 시민들까지 가세하기 시작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었다. 


위의 사진을 봐도 느낄 수 있겠지만 읽으면서 현재의 상황과 유사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거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4.19 혁명의 시작은 고등학생들의 시가 행진이었다. 이는 자기 또래의 친구가 무참히 살해 당했다는 사실에 많은 고등학생들의 분노하여 참여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울의 경우에는 대학생들의 참여가 많았지만, 지방에서는 고등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하고, 대학생들과 시민이 뒤를 받치는 형국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김주열 열사와 최순실의 딸 정유라 라는 존재이다. 각각 희생자와 가해자로서 입장은 완전한 반대였지만 자기 또래의 학생들이 분노하게 만드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때 한성여중 2학년이었던 진영숙 학생이 시위를 떠나기 전 홀어머니를 만나지 못하고 집에 남긴 쪽지는 그 당시 희생됐던 사람들 가운데 유일한 유서라고 한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중학생 답지않은 비장함을 느낄 수 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을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어머님,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님,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마는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광복을 위해 기뻐해주세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온 국민의 소망이 되어 버렸다.


이승만이 "내가 사임하면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질 것이 확실하다" 말하며 버티는 모습은 현재의 박근혜와 유사함을 넘어 완전 판박이 처럼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자리에서 물어나는 것만이 국민적 공분을 잠재울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에드워드 카(E.H. 카)의 말들을 간단히 소개하겠다. 그다지 길지 않은 문장들이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끝임없는 대화이다."


“한 사회가 어떤 역사를 쓰느냐, 어떤 역사를 쓰지 않느냐 하는 것보다 더 그 사회의 성격을 뜻깊게 암시하는 것은 없다.”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결코 일방적인 과정일 수는 없다.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또한 현재에 비추어 과거를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의 상호관계를 통해 양자를 더 깊게 이해시키려는 데 있는 것이다.”


"인간 세상의 진보는 현존하는 제도를 점진적으로 개선하는데 머물지 않고 제도와 그것을 떠받치는 은폐된 가설에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한 인간의 대담한 결의를 통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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